왜가 일본일까? 그 2

삼국사에 담긴 왜 관련 기록

삼국사에 나타나는 일본이라는 국호

고리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왜와 일본

삼대 사서이 등장하는 '왜/일본' 용례 대비 도표: 삼국사는 매우 적고 조선시대는 엄청 많아 로그눈금을 사용했음.

 

왜가 일본일까? 그 2

 

지난 글에서 왜가 동이의 한 갈래일 수 있음을 

지나사서의 동이전의 분류로부터 판단하여 보았다

지나인들이 왜를 동이로 분류했음은 객관적 시각이므로

왜가 고구리백제신라와 같이 동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가깝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다시 눈을 돌려 우리 사서 안에 남아 있는 왜의 존재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는 이미 신라 건국 바로 뒤인 혁거세 8(BCE 50) 신라를 침략하였으나 

지도자가 神德이 있다는 소문에 스스로 물러가기도 하고

본래 왜인이라는 분을 외교사절로 삼더니 

훗날에는 대보라는 고위직까지 오르기도 한다

 

그뿐인가 벌휴이사금 10(193)에 왜에 기근이 들었다고 

천여 명이 걸식하러 오는 기사에 

배를 타고 왔다고 적시하지 않았음에서

왜와 신라가 도보 이동이 가능한 가까운 거리에 경계를 맞대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백제가 멸망할 즈음이라면 자국민도 도망가야 할 시점인데

백제의 적군을 함께 막겠다고 몇 번씩이나 물밀듯이 구원하러 달려왔던

생사를 함께하겠다는 왜군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 명분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삼국사조차 명쾌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가 일본이 아쉬운 

지식인과 기술자 등을 꾸준하게 보내주고

오래동안 왜에 머물렀던 관리나 기술자를 

교대시켜 주는 기사는 제법 많이 등장한다

 

오히려 신라초에는 마치 왜가 식구와 같더니 

훗날엔 백제와 한 몸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은 쉽게 다룰 사실이 아니다.

 

 

삼국사에 담긴 왜 관련 기록

 

의 백제 전쟁 참여 동기 파악을 위하여

일단 삼국사에 기록된 왜와 관련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를 낱자만 사용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왜인왜국왜병과 같이 두 자의 단어를 사용하고

홑 자는 본기에서 단 1건이며지리지와 렬전에만 사용되었다.

 

신라본기

왜 기록 횟수총 59회 (왜인/33, 왜병/10, 왜국/13, 왜선/1, 왜적/1, 왜여왕/1)

백제본기 

왜 기록 횟수총 16(왜인/3, 왜국/11, 왜왕/1, /1)

 특기할 기록: 17대 아신왕 6(397)부터 등장

고구리본기

기록이 전혀 없음

 

이 통계는 삼국사’ 원문 가운데 관련 내용을 

필자가 별지에 일일이 옮겨가면서 직접 센 결과이다

독자들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쉽게 세어볼 수 있을 것이다

뒤에 고리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 추출한 통계도 이 자료에서 구하였다.

 

신라본기의 ‘왜’ 관련 기록의 내용은 59건 가운데 36건이 

침략(전쟁관련 기록이고 2건은 전쟁을 대비하는 기록이다

선물을 주고받거나 외교사절 교환은 8건에 불과하다

특이한 사항은

 

1) 침략할 때 확실하게 병선을 표기한 횟수는 4건이고

동변과 남변으로 침략이라는 표현이 모호하지만 

해변으로 간주한다면 7회이므로 

물길로 침략은 12

확실하게 육로를 이용한 침략은 16으로 판단된다.

 

2) 신라와 왜의 외교 관련 기록은 탈해 3(59), 

지마이사금 12(123), 아달라이사금 5(158), 20(173), 

[벌휴이사금 10(193) 걸식 사건], 기림이사금 3(300), 

흘해이사금 3[(312) 청혼], 35[(344) 청혼 거절], 

36[(345) 국교단절]으로 가까운 나라치고는 너무 적막하다.

 

3) 한편전쟁도 외교관계도 

소지마립관 22(500) 이래 신라와 당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시기까지 

150년 이상 뚝 끊어진다는 사실이다

또 670년 왜의 국호를 일본으로 고친 후에 신라는 

40대 애장왕 3(802) 왜국이라는 국호를 단 한 번만 사용하고

백제멸망 이후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나머지 13회는 왕이 왜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논의한다거나

인질을 보내려고 하는데 반발하는 내용이라 특정하여 분류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백제본기의 ‘왜’ 관련 기록은 17대 아신왕 6(397)부터 나타나는데 

우호적 외교관계 8백제의 왕위 계승 협조와 군사원조가 8건이다

특이한 사실은 

 

1) 흘해이사금 때(345) 신라와 외교단절

소지마립간 22(500) 이후 전쟁조차 사라지는데

아신왕 6(397)부터 백제와 밀접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2) 백제도 20대 비유왕 2(428) 이후 

30대 무왕 9(608)까지 아무런 기록도 없다

그러더니 의자왕 13(653) 갑자기 왜와 우호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 출현한다.

 

신라 초는 왜인이 고위직 관리가 될 정도의 사이좋던 왜가 어느 시기(397년)에 국교단절을 넘어 전쟁조차 사라진다(500년부터). 오히려 백제와 밀착이 시작되더니 멸망으로 치닫는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생사를 걸고 참전한다. 동기가 밝혀진 연구가 없어 더욱 의문이 커진다. 

 

 

삼국사에 나타나는 일본이라는 국호

 

바로 앞에서 가 백제 패망 뒤인 

670년에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음을 알렸다고 기술하였다

따라서 삼국사의 일본’ 기록의 등장은 모두 신라기록이며, 검색결과는 

총 13회 가운데 일본국(12)이라 하였고일본은 단 한 차례였다.

 

1) 이 13개의 기록 대부분인 11회가 외교사절 입국 관련이었다

눈에 띄는 기록이라면, 35대 경덕왕 때 2

[원년(742)과 12(753)]에는 사신조차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머지 9회 가운데 2[애장왕 5(804), 헌강왕 8(882)]는 

황금 300량의 선물을 바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882년 이후 전쟁도 외교관계도 없었다.

 

2) ‘일본이라 기록한 2회만 전쟁 또는 전쟁 대비 관련 기록이었는데각각

성덕왕 21년(722) 및 30년 4월(731)

築毛伐郡城, 以遮日夲賊路.(모벌군성을 쌓아 일본 도적들의 침입로를 막았다.)

日夲國兵舩三百艘 越海襲我東过 王命将出兵 大破之.(일본국의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기에,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크게 깨뜨렸다.)

로 침략의 양상이 일본국으로 국호를 가졌다 하여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고리사에 등장하는 왜 및 일본 기록

 

삼국사에 등장하는 의 기록은 원문을 하나하나 

새로 추출하고 옮겨 적으면서 횟수를 세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삼국사와 달리

고리사에서 검색한 결과값이 총 634회라 

기록을 일일이 옮기기에는 무리였다

 

젊어서부터 고리시대와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왜구가 참으로 골치 아픈 문제였음이 생각났다

따라서 꾀를 썼다검색하는 질문 어휘를 왜구왜적왜선으로 하였다

검색하고 사용된 기록을 검토하니 대부분 약탈이나 침략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본은 적대적 개념보다 외교와 같은 정상적인 상대국 개념으로 사용할 때 사용되었다

즉 가치 중립적인 경우에서 사용되어

적대적으로 사용된 와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로 나타나는 종 634 가운데 

倭寇(왜구): 309

倭賊(왜적): 102회 [왜적방어도지휘사왜적체복사왜적추포사왜적방어사 포함]

倭船(왜선): 31

倭俘(왜부): 9회 [약탈하다 잡힌 포로]

捕倭使(포왜사): 3회 [왜적을 잡으러 다니는 관리]

倭人(왜인): 11

倭民(왜민): 2

倭國(왜국): 3

홑 倭(): 164회 [634회에서 앞의 왜구에서 왜국까지 횟수를 제외한 나머지]

日本(일본)으로 검색되는 횟수는 총 179

日本國(일본국) 37

日本人(일본인) 5

일본상 2일본상객 1일본상인 1일본상선 2

기타 日本 131

 

1) 왜구왜적왜부포왜사는 모두 약탈 또는 전쟁급에 관련된 용어이고

왜적 뒤에 붙은 관리명인 왜적방어도지휘사왜적체복사

왜적추포사왜적방어사포왜사라는 명칭은 

왜구 또는 왜적의 약탈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용어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머지 홑 왜의 기사에는 표류한 왜인을 

귀국 처리한 경우 등 분류가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그 중에도 약탈 관련 기사가 포함될 수 있으나전수를 검토하지 못하였다.)

 

2) 또 다른 특징적 사실은 왜구는 단순히 떼도둑을 뜻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음에 모두 해변에 위치하는 지방명이 뒤따르므로 

()’가 도둑질 또는 약탈하다라는 동사로도 쓰였으나

이번 통계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합산하였다.

 

3) 더욱 특이하게 보이는 사실은 이 고리시대 지방의 이름이 

삼국시대와 매우 다른 지명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지명과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고 있다

예컨대 왜구가 등장하는 첫 기록부터 20회만 보더라도,

金州(금주), 경상도, 금주, 금주, 웅신현, 금주, 금주, 固城·竹枺·巨濟(고성·죽말·거제), 장흥부, 동래군, 해남현, 전라도 모두량, 강릉도, 전라도, 교동, 각산수, 韓州(한주)

로 삼국사에서는 보이지 않던 지명이 많다.

 

4) 倭寇(왜구)가 등장하는 첫 기록이 고리가 건국되고

한참 뒤인 고종 10(1223)이라는 사실이며 

고리가 멸망하는 해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시대적 상황이다

고리가 건국되고 무려 3백년이 흐른 다음에 왜의 노략질이 시작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왜와 일본

 

왜구는 조선시대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던 주제이며

삼국시대와 고리시대와 비교를 위하여 반드시 검색할 대상이었다

 

倭 총 8,388회 (아래 괄호 안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큰 숫자만 뽑았음)

왜구 532 (태종/60, 세종/88, 성종/34, 중종/69, 명종/76, 선조/46, 광해군/12, 인조/12)

왜적 1262 (세종/110, 성종/59, 중종/93, 명종/49, 선조/797, 광해군/27)

倭奴 863 (태종/13, 세종/41, 성종/27, 중종/253, 명종/53, 선조/312, 광해군/55, 인조/11)

倭船 597 (태종/58, 세종/65, 성종/93, 중종/124, 명종/57, 선조/67)

倭國 131 (중종/20, 선조/19)

倭人 2,060 (세종/291, 성종/350, 중종/443, 명종/122, 선조/165, 숙종/95)

日本 총 4,893 (태종/235, 세종/456, 단종/151, 세조/398, 성종/867, 연산군/135,

 중종/340, 명종/125, 선조/569, 광해군/113, 인조/113, 숙종/69)

 

고리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왜로 지칭할 때는 략탈과 전쟁상태에 사용된 용어였고

외교와 포로송환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일본이 사용되었다.

 

 

신라와 백제와 왜의 기록 검토와 결론

 

삼국사 신라본기에 담긴 왜 관련 기록에서 

라는 글자의 등장 횟수(59)를 따져 보았다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생각한다면 결코 많지 않은 기록이라 

통계적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전쟁기록이 절대적으로 많았고(36), 외교관계는 매우 적었음(8)을 알 수 있었다.

 

흘해이사금 때(345) 신라와 외교단절 뒤

(소지왕 때부터<500전쟁조차 사라짐), 

아신왕 6(397)부터 백제와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점점 더 단단해짐을 발견한 사실은 큰 수확이었다

당연하게 재확인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백제 멸망 전쟁에 가 생사를 함께한 

결정적 동기를 삼국사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숙제로 남겨둔다.

 

고리사에 등장하는 왜 및 일본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왜와 일본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침략 기록에는 

외교관계를 기록할 때는 일본을 사용하는 흐름은 매우 비슷하였다

다만 기록 횟수가 조선이 월등하게 많은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이 압도적으로 기록이 충실한 자료라는 사실도 원인이겠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삼국시대 기록이 충분하지 못하여 

단정적인 결론을 낼 수 없음은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백제 멸망이 일본이라는 국호 사용의 

직접적 동기였음은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삼국과 왜의 주된 영역이 대륙이었음과

꽤 많은 백제와 왜의 유민이 대륙의 영토를 잃고 

일본열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왜구가 발생한 것은 아닐지 하는 의심을 밝혀 보기로 한다.

 

 

 

작성 2026.07.05 22:54 수정 2026.07.0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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