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중동, 그 한복판에서 이집트 경제가 의외의 성적표를 내놓았다. 이란발 지역 분쟁의 충격이 환율과 물가를 흔드는 가운데서도 카이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또 한 번 합의를 끌어냈다. 16억 4천만 달러 규모의 신규 자금이다.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나라와 무너지는 나라를 가르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이집트가 그 답의 한 단서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다진 재정 체력
이집트는 2022년 12월 IMF로부터 30억 달러 규모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처음 승인받았다. 이후 2024년 3월, 이 프로그램은 80억 달러로 확대됐고, 카이로 정부는 분기마다 이어지는 점검을 통과하며 자금을 단계적으로 받아왔다. 올해 들어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며 이집트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뻔했지만, 정부는 연료·전력 가격 조정과 정부 부문 에너지 소비 절감, 지출 우선순위 재조정 같은 선제적 조치로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IMF는 이러한 대응이 "시의적절하고 단호했다"고 평가한다.
16억 4천만 달러, 두 갈래 지원의 합산
무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는 정부와 IMF 실무진이 '확대금융제도(EFF)' 7차 점검과 '회복력 및 지속가능성 기금(RSF)' 2차 점검에 대한 실무자급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EFF 프로그램에서는 약 11억 1천만 특별인출권(SDR), 달러로 환산하면 약 15억 달러가, RSF 프로그램에서는 1억 SDR, 약 1억 3,600만 달러가 추가로 지급될 예정이다. 두 금액을 합치면 약 16억 4천만 달러에 이른다. 이번 합의가 IMF 집행이사회의 승인을 거치면, 2022년 이후 이집트가 두 프로그램을 통해 받은 누적 지원 규모는 약 53억 SDR, 달러 기준 약 72억 달러까지 늘어난다.
숫자 너머의 회복 신호
IMF는 실무진 협의를 마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집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회계연도 3분기에 5%에 이르렀고, 첫 3분기 누적 성장률은 5.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재정수지 기초 흑자는 올해 GDP 대비 4.8%에서 내년 5%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변동환율제는 대규모 포트폴리오 자금 유출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고, 미국과 이란 간 합의 발표 이후로는 자금 유입이 재개되며 환율 약세 흐름도 상당 부분 되돌려졌다고 IMF는 설명한다. 다만 인플레이션 압력과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하방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겼다. 카이로의 한 경제 관료는 이번 합의를 두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받아낸 신뢰의 증표"라 표현했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뒤에는 한 나라가 위기를 버텨낸 시간이 쌓여 있다. 16억 4천만 달러라는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집트가 전쟁의 그늘 아래서도 재정 규율을 흔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IMF 집행이사회의 최종 승인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지만, 카이로 정부의 행보는 이미 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위기는 늘 같은 얼굴로 오지만, 그것을 버텨내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집트의 다음 선택은 무엇을 증명하게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