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붙드는 생명의 닻, 예수 그리스도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86)

지적 동의를 넘어선 전인격적 투항

나의 의(義)를 포기하고 타자의 의를 수용하는 신비

절망의 심연에서 발견하는 유일한 구원의 정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6문
 

Q. What is faith in Jesus Christ? A. Faith in Jesus Christ is a saving grace, whereby we receive and rest upon him alone for salvation, as he is offered to us in the gospel.
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써 우리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그분만을 영접하고 그분에게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ㆍ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ㆍ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ㆍ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3-4)
ㆍ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ㆍ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이미지 제공=수현교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6문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믿음'의 본질을 정의한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히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감정적 고양이나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소요리문답은 이를 "영접하고(Receive)", "의지하는(Rest upon)" 동사로 표현한다. 이는 믿음이 우리 밖에서 온 선물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수용인 동시에, 자신의 모든 무게를 그분께 실어버리는 능동적 투신임을 보여준다.

 

믿음은 '자기 중심성'의 파괴를 전제로 한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자아를 확신의 기초로 삼았다면, 소요리문답의 믿음은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실존적 파산 선언에서 시작된다. 나를 지탱하던 모든 도덕적 자만과 성취를 내려놓고, '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존재적 기초로 받아들이는 역설이다. 이는 자아의 확장(Self-expansion)이 아니라 자아의 항복(Self-surrender)을 통해 비로소 참된 자유를 얻는 신비로운 여정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의지한다(Rest upon)"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인은 끊임없는 성과 압박과 불안 속에서 '안식(Rest)'을 잃어버렸다.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더 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내 영혼의 짐을 완전히 맡기는 심리적 해방을 가져온다. 마치 거친 바다 위에서 구조선에 몸을 던진 조난자가 비로소 숨을 내쉬듯, 믿음은 불안의 파도를 잠재우는 영혼의 안식처가 된다.

 

문답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대로(As he is offered)"라는 문구는 믿음의 객관성을 강조한다. 믿음은 내 안에서 쥐어짜 내는 주관적 확신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약속으로 주어진 '복음'이라는 창문을 통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맹신'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에 근거하여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확신'이다. 이 객관적인 약속이 주어질 때, 우리의 흔들리는 감정은 견고한 진리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6문은 우리에게 '빈 손'을 요구한다. 내 손에 무언가를 꽉 쥐고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내가 쌓은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분이 세우신 구원의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다.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는 이 단호한 집중과 몰입이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생명의 환희로 옮겨놓는다.

 

우리를 향해 내밀어진 복음의 손길을 붙잡는 것, 그 소박한 영접이 영원한 구원을 결정짓는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된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5.13 09:50 수정 2026.05.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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