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169화 노량진 학원가에서의 시간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 더 오래 남는다

지나온 시간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만드는 재료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한 장면이 불러온 기억

엊그제였다.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한 청년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시선을 붙잡았다. 취업을 준비하며 노량진 학원가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반복되는 강의와 문제 풀이, 그리고 지친 기색 속에서도 버티는 눈빛. 그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 내 시간이 겹쳐졌다.

 

다시 떠오른 겨울

2006년 1월의 겨울이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나는 부모님의 결정으로 큰이모댁에 머물게 되었다.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라는 선택이었다. 낯선 공간과 낯선 생활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반복되던 하루의 시작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광명에서 노량진까지 이어지는 버스를 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경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서로 다른 감각의 과목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 수업을 들었다. 영어는 달랐다. 이해가 되었고, 흥미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수학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멀어진 과목이었다. 칠판 위의 공식은 낯설었고, 설명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멈춰버린 흐름

이해하려 할수록 더 멀어졌다. 그 과정은 점점 부담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수업을 버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선택이 시작되었다. 수학 수업을 피하기 시작했다.

 

다른 길로 향한 발걸음

친척형과 함께 플스방으로 향했다. 게임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학원가 골목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며 웃었다. 그 순간은 공부와는 다른 리듬이었다. 긴장 대신 편안함이 있었다.

 

지나고 나서 보이는 것

그때의 선택은 단순한 회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장면들은 다르게 남아 있다. 경쟁의 공간을 처음 마주했던 경험,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 또래와 나누었던 시간.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노량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현재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과거다. 나에게는 이미 지나온 시간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 속 청년을 보며

텔레비전 속 청년은 지금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쉽지 않은 하루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그 시간 역시 언젠가는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결국 의미로 남는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그때의 선택을 평가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의 시간을 어떤 기억으로 남기고 있는가.

 

결국 남는 것

완벽했던 시간은 기억되지 않는다. 흔들렸던 순간,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분명하다. 지나온 시간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만드는 재료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5.12 10:01 수정 2026.05.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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