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침묵과 왜곡의 부조리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78)

사실의 생략이 낳는 거대한 오해의 비극

타인의 명예를 잠식하는 보이지 않는 언어적 폭력

신뢰의 토대를 허무는 방관과 냉소의 위험성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8문

 

Q. What is forbidden in the ninth commandment? A. The ninth commandment forbiddeth whatsoever is prejudicial to truth, or injurious to our own or our neighbor’s good name.
문. 제9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9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진실에 해가 되는 모든 것이나, 우리 자신과 이웃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모든 것입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 17:28)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6)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시 15:3)

 

[이미지 제공=수현교회]


진실은 유리그릇과 같아서 한 번 금이 가면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8문은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을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정적 행위들을 '진실에 해가 되는 것'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무엇이든지(Whatsoever)"이다. 이는 단순히 직접적인 거짓말뿐만 아니라, 진실을 교묘하게 비틀거나 유리한 사실만 편집하여 전달하는 모든 기만적인 행위를 포함한다.

 

진실에 해가 되는 행위는 사회적 소통의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사실적 진리가 파괴될 때 정치적 자유도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현대 사회의 가짜 뉴스와 정보 왜곡은 단순한 오보를 넘어 타인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소요리문답이 금지하는 '진실에 유해한 모든 것'은 결국 타인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적 자산인 신뢰를 갉아먹는 행위다. 고의적인 침묵이나 맥락을 거세한 부분적 진실 또한 '유해한 것'의 범주에 들어간다.

 

심리학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는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투사(Projection)인 경우가 많다. 잠언 18:8절이 지적하듯 "험담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듣는 이에게는 달콤할지 모르나,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타인의 작은 실수를 부풀리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유포하는 행위는 그 대상의 인격을 '소비'하는 잔인한 오락이다.

 

소요리문답은 이웃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도 금한다. 스스로 비굴해지거나 정직하지 못한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창조주가 부여한 존엄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와 경제 현장에서도 이 제9계명은 날카로운 통찰을 준다. 경쟁사를 비방하여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제품의 결함을 숨기고 마케팅 수사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은 제78문이 금지하는 '진실에 해가 되는' 행위다. 또한 직장 내에서 동료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조직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살인과 다름없다. 진실이 존중받지 못하는 조직은 감시와 의심의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소요리문답 제78문은 우리에게 '정직의 파수꾼'이 될 것을 촉구한다. 진실은 때로 불편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을 지켜내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명예를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다. 악의적인 비방이 담긴 대화의 자리를 거절하고, 진실이 왜곡되는 현장에서 침묵하지 않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더럽히는 얼룩이 아니라, 그 존재의 가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진실을 사랑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삶이야말로 무너진 시대의 신뢰를 재건하는 유일한 길이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4.30 17:05 수정 2026.04.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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