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1. 골목 끝의 불빛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1. 1. 골목 끝의 불빛

 

겨울 저녁이었다. 부산의 골목은 바람이 한 번 스치면 그대로 흔들리는 종이처럼 얇았다. 집과 집 사이의 틈은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기침 소리까지도 건너편으로 흘러갔다. 해가 진 뒤의 공기는 더 차가웠고, 그 차가움은 벽을 타고 스며들어 방 안까지 들어왔다.

 

영수는 그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발밑의 눈은 이미 여러 번 밟혀 단단해져 있었고, 신발 밑창이 닿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손은 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지만, 손끝은 이미 얼어 있었다. 손끝이 아픈데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꺼내는 순간,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골목 끝, 오래된 건물 하나의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커튼 사이로, 빛이 조금씩 번져 나왔다. 그 빛은 눈 위에 길게 깔려, 마치 길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영수는 걸음을 멈췄다.

 

그 빛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따뜻해 보였다.

 

따뜻하다는 감각은 요즘 들어 점점 낯설어지고 있었다. 집 안의 공기는 늘 서늘했고, 엄마의 몸은 점점 식어가는 것 같았다. 불을 피워도, 이불을 덮어도, 그 차가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영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여전히 누워 있을 것이다.

 

사흘째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인 줄 알았다. 기침을 조금 하고, 열이 조금 나는 정도였다. 엄마는 늘 그랬다. 아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괜찮다"는 말을 너무 쉽게 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기침은 점점 깊어졌고,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밤에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마치 안쪽에서 무언가가 막히는 것처럼. 그 소리는 짧게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끊겼다가, 이어졌다. 영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엄마의 다음 숨이 나올 때까지.

 

어젯밤에는 새벽 내내 그랬다.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 채 어둠을 바라보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눈을 뜨면 방 안의 어둠이 엄마를 삼킬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저 불빛이 있는 곳은 병원일까.

 

어른들은 늘 말했다. 병원은 돈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괜히 갔다가 돈만 날린다."

 

 "돈 없으면 문 앞에서 쫓겨난다." 

 

그 말들은 어린 영수에게 하나의 규칙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규칙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영수는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다시 멈췄다.

 

만약 들어갔다가 돈을 내라고 하면. 만약 없다고 말하면 쫓아내면. 만약 이미 늦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마지막 생각이 떠오른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쿵 내려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의 불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도망치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 있다고. 여전히 열려 있다고.

 

영수는 주머니 안쪽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동전 몇 개가 닿았다. 하나, 둘, 셋. 민호에게 빌린 것이었다. 그것으로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턱도 없이 부족한 돈일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이것밖에 없었다.

 

영수는 그 동전을 손 안에 꼭 쥐었다.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이상하게도 그를 붙잡아 주었다.

 

그는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발밑의 눈이 더 크게 소리를 냈다.

 

사각, 사각.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골목 끝이 가까워졌다. 불빛도 더 선명해졌다. 이제는 커튼의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수는 문 앞에 섰다.

 

문은 생각보다 작았다. 낡은 나무문이었다. 손잡이는 금속으로 되어 있었고, 여러 번 닿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닿기 직전에 멈췄다. 손이 공중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순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땀에 젖은 이마. 말없이 감고 있는 눈. 숨을 들이쉴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가슴. 그리고 새벽마다 들려오던 그 소리.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던 그 소리.

 

영수는 이를 악물었다.

 

손을 더 내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문 안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작은 발걸음. 천천히 다가오는 기척. 영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영수의 얼굴에 닿았다. 그 온기는 짧았지만 분명했다. 단순히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숨 쉬는 곳에서만 만들어지는 종류의 온기였다.

 

그는 숨을 멈춘 채 그 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영수의 세계가 아주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4.27 09:19 수정 2026.04.27 09:19

RSS피드 기사제공처 :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 등록기자: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KOEIA 중소기업 뉴스 포커스 | 영인에스티 AI-MRV 탄소중립 플랫..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라오스로 떠나는 청년들, 아동 복지 패러다임 바꾼다
포항 상권 살리는 한동대 AI 창업 지원 사업 가동
AI 보안 패러다임 바꾼다, 에이아이딥 차세대 솔루션 공개
AI로 불법 현수막 꼼짝 마! 지자체 CCTV와 차량이 실시간 자동 추적..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미용실, 무신고 유사 의료행위 심각… 포상금 최대 2..
대한민국을 함께 바꿀 기업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겠습니까 #CCBS #공..
비오는 지금. 주님의 약속을 기다려봅니다. #찬양 #사랑 #예수님 #..
6근(눈귀코혀몸뜻)×6경(색성향미촉법)×3세(과거현재미래), 태양직경은 ..
#이용사자격증 #인천부평이용학원 한번에 합격했어..
ai365news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사람 #행복나눔 #사랑나눔..
AI 매칭엔진 도입 2026 충청권 ICT 취업박람회 개최
국회 조형물 거장 정보원 작가, 50년 베일 벗는다...성북서 역대급 전..
반도체 끝났다고? 모건스탠리가 폭로한 하반기 주식 대이동 시그널
'제2회 전국 우리소리 경창대회' 종로에서 화려한 개막
자연의 모든 것이 대립과 조화로 움직인다고 보았기때문. 짝수는 균형과 안..
보양식을 먹어야 하는 날~。#jejuolletrail #ssicho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경기도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경작 사후조사 착수 | 부동산 투기 철퇴 ..
단 하나의 빛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선한영향력 #CCBS #칭찬위원연합회..
당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군사정보를 신라 문무왕에게 급히 알리..
허동보의 일히일비(19) - 가려 먹는다고 큰 일이 나진 않아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사랑이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순간 #사랑나눔축제 #칭찬위원연합회 #사랑으..
매듭은 지었지만, 자리는 지킵니다 | 계약해제 수용하라, 현대건설 결단하..
유튜브 NEWS 더보기

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존재의 거룩한 광휘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초청토론회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 이스라엘 3대 절기와 그 의미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관계의 언어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보장특구사업 상리마을 주민리더 도쿄탐방기

봄 (Feat.황정호)

흩어진 말들을 모아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50 Movements] #9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오케스트라 | Shos...

병원 광고비, 어디서 새고 있습니까? 팀퍼포먼스 정용훈 대표가 말하는 AI 병원 마케팅

믿음의 선배들(8) - 타협을 모르는 순교자, 로마의 히폴리투스

개인vs법인사업자 장단점과 법인전환 절세방법(feat. 가족법인과 영업권으로 절세하기)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8) 욕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정교한 매뉴얼

#쏠롱구스노래들024 #SOS024 #광야 #Wilderness #정원진 #solongus #CCM #car...

HAUSER - Oblivion (Piazzolla)

칭찬사랑나눔 칭찬합시다축제시작된다. #칭찬문화

은혜와 감동이 물결치는 찬양 - 삼일노회 수련회

믿음의 선배들(7) - 열정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7] - 피 터지는 성전논쟁, 그 시작은?

캔바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l Canva 팝업 행사 디자인 과정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