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땀방울을 배신하는 시대의 유혹에 대하여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75)

경제적 무질서가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

탐욕의 끝에서 마주하는 인격의 파괴

나와 이웃의 안녕을 해치는 모든 불의한 시도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5문

 

Q. What is forbidden in the eighth commandment? A. The eighth commandment forbiddeth whatsoever doth, or may, unjustly hinder our own, or our neighbor’s, wealth, or outward estate.
문. 제8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8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이웃의 재산과 외적인 상태를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모든 일입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잠 21:17)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0-2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함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더하리라(잠 28:19)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제공=수현교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5문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물리적 탈취'를 넘어 '경제적 방해(Hinder)'와 '부당함(Unjustly)'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는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의 박탈'이나 '불공정 경쟁'에 대한 엄중한 신학적 경고다. 

 

우리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고 해서 이 계명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나의 게으름으로 자신의 경제적 기초를 무너뜨리거나, 나의 탐욕으로 이웃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경제적 기회를 가로막는 행위 모두가 제8계명이 금지하는 '불의'에 해당한다.

 

재산은 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지탱하는 외적 수단이다. 소요리문답은 먼저 '우리 자신의 재산'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잠언은 이를 '방탕함'과 '나태함'으로 구체화한다. 무절제한 소비, 도박, 혹은 자신의 재능을 썩히는 게으름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원을 낭비하는 일종의 '자기 도둑질'이다. 

 

철학자 세네카(Seneca, BC 4-AD 65)가 "가장 큰 낭비는 인생을 뒤로 미루는 것"이라고 했듯, 정당한 노동을 회피하고 일확천금을 바라는 태도는 자신의 외적인 상태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

 

더 나아가, 이 계명은 '이웃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모든 교묘한 방식들을 겨냥한다.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허위 광고를 통한 소비자 기만,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당 이득 등 고도의 지능적인 경제 범죄로 나타난다. 에베소서의 권면처럼, 도둑질은 단지 뺏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함으로써 타인의 궁핍을 채워줄 때 비로소 완전히 극복된다. 타인의 경제적 성장을 시기하여 방해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계약으로 이웃의 몫을 깎아내리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터전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제75문은 경제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자산이나 공공의 이익을 사적으로 가로채는 행위, 혹은 환경 파괴를 통해 미래 세대의 자산을 미리 당겨 쓰는 행위는 거시적인 의미에서 이웃의 재산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일이다. 자본의 흐름이 한쪽으로만 쏠려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불의에 침묵하는 것 또한 이 계명의 정신을 거스르는 일일 수 있다.

 

소요리문답 제75문은 우리에게 '정직한 경계'를 요청한다. 나의 이익이 타인의 눈물이 되지 않도록 살피고, 나의 소유가 타인의 빈곤을 담보로 한 것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정당한 수고 없이 얻으려는 탐욕을 경계하고, 내 곁의 이웃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제8계명의 금령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경제 활동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보존해 주는 거룩한 상호 작용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 질서만이 우리 모두의 '외적인 상태'를 평안하게 지켜낼 수 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4.26 22:11 수정 2026.04.2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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