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125화 안경을 쓴다는 것은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안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만 바라보면 마음은 무겁다

안경 덕분에 더 선명한 세상을 보게 되었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예상하지 못한 검사대 앞에서

지난 명절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렌즈를 새로 맞춰야 한다며 안경점에 함께 가자고 했다. 특별한 일정이 있던 날은 아니었고, 그 방문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감도 없었다. 안경점에 도착했을 때 매장은 예상보다 붐볐다. 아내는 시력 검사를 받으러 들어갔고, 나는 아들과 매장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내 시력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그저 오랜 습관 같은 궁금증이었다. 대학생 시절까지 나는 양쪽 시력 모두 1.5를 유지해 왔다. 그 덕분에 눈에 대해서는 별다른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고, 막연하게 ‘나는 아직 괜찮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 위의 가벼운 확인일 뿐이었다.

 

한마디 질문이 남긴 여운

검사를 마친 직원이 웃으며 한마디를 건넸다. “지금 이 상태로 저녁에 운전을 하신 건가요?”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최근 밤 운전 중 표지판이 또렷하지 않게 느껴진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순간들이 그 질문 한마디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검사 결과는 0.9와 0.7.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분명 예전과는 달라진 수치였다. 근시가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 그동안 ‘나는 눈이 좋다’고 믿어 온 생각이 조용히 균열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아내의 말도 그 균열을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내의 렌즈를 맞추는 김에 나 역시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시력용 안경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낯선 물건을 손에 쥔 순간

안경을 전혀 써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알이 없는 패션 안경을 잠시 착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불편함 때문에 오래 쓰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십여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시력을 보정하기 위한 안경을 맞추고 있는 내 모습이 묘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완성된 안경을 건네받아 한동안 바라보았다. 분명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마음 한편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분명했다. 나이를 체감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시력만큼은 자신 있다고 믿어왔는데, 그마저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시야가 바뀌는 순간의 깨달음

안경점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설 명절을 앞두고 선물을 사러 이동해야 했기에 조심스럽게 새 안경을 써 보았다. 그 순간 시야가 확연히 달라졌다. 멀리 있던 건물의 글씨가 또렷하게 들어왔고, 도로 표지판도 선명하게 읽혔다. 신기한 마음에 안경을 살짝 내려 보았다. 다시 흐릿해졌다. 다시 올려 쓰자 또렷해졌다. 그 단순한 변화가 마음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마음을 눌러 앉히던 우울함이 서서히 풀렸다. 그리고 한 문장이 조용히 떠올랐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우리는 왜 변화를 먼저 두려워하는가

안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만 바라볼 때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안경 덕분에 더 선명한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점에 시선을 두자 감정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종종 변화 자체보다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었다’는 감각에 더 크게 흔들린다. 몸의 변화, 환경의 변화, 역할의 변화 앞에서 마음이 먼저 주춤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삶은 멈춰 있는 상태를 기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던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을 맞이할 뿐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금 당신은 변화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 있는가.

최근 들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변화는 없는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를 미루고 있는 현실은 없는가. 그 변화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보일 수는 없을까. 때로 삶은 무언가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선명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또렷해진다는 것의 의미

안경을 쓰고 바라본 세상은 분명 이전보다 또렷했다. 그리고 그 또렷함 속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변화를 부정할수록 마음은 흐릿해지고, 변화를 받아들일수록 시야는 선명해진다. 안경 하나를 맞췄을 뿐이지만 그 경험은 단순한 시력 보정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 몸의 변화를 대하는 시선,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까지 다시 정리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오늘도 일상은 조용히 변화를 건네고 있다. 나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3.04 20:01 수정 2026.03.04 20:01

RSS피드 기사제공처 : 보통의가치 미디어 / 등록기자: 김기천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마음을잇는축제 #사랑나눔축제 #..
죽은영이살아난다는 의미 #예수님 #사랑 #구원 #사랑 #구원의확신
돌담으로 그려진 인문학 지도。#jeju #ssicho
높이가 달라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변할까?。#김포공항 #ssicho..
태극과 음양의 이치를 삼문에 적용, 세 개의 문을 통해 "질서와 경계"를..
비 내린 뒤 서산부석사 ~ 。#서산부석사 #도비다원 #씨초
여행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
2026 대학가 흔드는 AI 홍보 비책, 대학 생존율 높인다
주담대 3억 한도? 영끌족도 결국 손 들었다!
삼성전기 주가 반토막 비명, 바닥인가 탈출 기회인가 분석
정·재계 뒤흔든 역대급 민간 결사체 떴다… 사단법인 더나은대한민국
사회공헌만 하시겠습니까260여 개 언론에 기록하시겠습니까 #ESG #ES..
KOEIA 중소기업 뉴스 포커스 | 영인에스티 AI-MRV 탄소중립 플랫..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라오스로 떠나는 청년들, 아동 복지 패러다임 바꾼다
포항 상권 살리는 한동대 AI 창업 지원 사업 가동
AI 보안 패러다임 바꾼다, 에이아이딥 차세대 솔루션 공개
AI로 불법 현수막 꼼짝 마! 지자체 CCTV와 차량이 실시간 자동 추적..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미용실, 무신고 유사 의료행위 심각… 포상금 최대 2..
대한민국을 함께 바꿀 기업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겠습니까 #CCBS #공..
비오는 지금. 주님의 약속을 기다려봅니다. #찬양 #사랑 #예수님 #..
6근(눈귀코혀몸뜻)×6경(색성향미촉법)×3세(과거현재미래), 태양직경은 ..
#이용사자격증 #인천부평이용학원 한번에 합격했어..
ai365news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사람 #행복나눔 #사랑나눔..
AI 매칭엔진 도입 2026 충청권 ICT 취업박람회 개최
국회 조형물 거장 정보원 작가, 50년 베일 벗는다...성북서 역대급 전..
반도체 끝났다고? 모건스탠리가 폭로한 하반기 주식 대이동 시그널
유튜브 NEWS 더보기

신앙의 성장단계를 아시나요?

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존재의 거룩한 광휘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초청토론회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 이스라엘 3대 절기와 그 의미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관계의 언어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보장특구사업 상리마을 주민리더 도쿄탐방기

봄 (Feat.황정호)

흩어진 말들을 모아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50 Movements] #9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오케스트라 | Shos...

병원 광고비, 어디서 새고 있습니까? 팀퍼포먼스 정용훈 대표가 말하는 AI 병원 마케팅

믿음의 선배들(8) - 타협을 모르는 순교자, 로마의 히폴리투스

개인vs법인사업자 장단점과 법인전환 절세방법(feat. 가족법인과 영업권으로 절세하기)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8) 욕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정교한 매뉴얼

#쏠롱구스노래들024 #SOS024 #광야 #Wilderness #정원진 #solongus #CCM #car...

HAUSER - Oblivion (Piazzolla)

칭찬사랑나눔 칭찬합시다축제시작된다. #칭찬문화

은혜와 감동이 물결치는 찬양 - 삼일노회 수련회

믿음의 선배들(7) - 열정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7] - 피 터지는 성전논쟁, 그 시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