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적 위기의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리더십의 전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23)

진리와 자비 그리고 정의가 만나는 교차점

무지를 깨우는 빛과 죄를 씻는 희생의 향연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과 영혼을 보호하는 통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3문

 

Q. 23. What offices doth Christ execute as our Redeemer? A. Christ, as our Redeemer, executeth the offices of a prophet, of a priest, and of a king, both in his estate of humiliation and exaltation. 
문 2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주로서 어떤 직분을 수행하십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속주로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수행하시되, 낮아지신 지위와 높아지신 지위 양면에서 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너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요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행 3:21-22)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6-7)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인간은 끊임없이 완벽한 리더를 꿈꾸어 왔다. 플라톤(Platon)은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 왕'을 고대했고,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는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기를 겸비한 군주를 갈망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한 인간이 진리를 완벽히 꿰뚫어 보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완벽히 공감하며, 그 모든 과정을 흔들림 없는 정의로 통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지식은 오만하기 쉬우며, 자비는 무력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3문은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던 이 세 가지 리더십의 원형을 '그리스도의 삼중직(Munus Triplex)'이라는 신학적 틀로 제시한다.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라는 칭호 자체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한다. 구약 성경의 맥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특별한 공적 직무를 위해 구별되었음을 상징한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 제사장, 왕이라는 세 가지 직분을 발견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역할의 분담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근본적인 결핍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다. 인간은 무지(無知)하여 진리를 모르고, 유죄(有罪)하여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며, 무력(無力)하여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우리의 무지를 깨우치시고,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씻기시며, 왕으로서 우리의 무력함을 통치하신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첫째로, 그리스도는 '선지자(προφήτης)'의 직분을 수행하신다. '프로페테스(선지자)'의 의미는 '대신하여 말하는 자'다. 선지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선포하는 자다. 현대 지식 사회에서 선지자적 리더십은 '비전(Vision)'과 '진정성(Authenticity)'에 닿아 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빅데이터 시대에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방향성이다. 그리스도는 친히 '로고스(λόγος, 말씀)'가 되셔서 인간에게 삶의 목적과 우주의 질서를 가르치신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빛의 폭로다.

 

둘째로, '제사장(ἱερεύς)'의 직분이다. 헬라어 '히에류스(제사장)'를 라틴어로는 '폰티펙스(Pontifex)'라고 하는데, 이는 '다리를 놓는 사람(Bridge-builder)'을 뜻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잇는 역할이다. 제사장의 핵심은 '공감'과 '희생'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제물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스스로를 내어주셨다. 이는 현대 심리학과 사회학이 강조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정점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제사장적 리더십은 혐오와 분열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셋째로, '왕(βασιλεύς, 바실류스)'의 직분이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세상의 전제 군주와는 결이 다르다. 그의 통치는 억압이 아니라 '보호'와 '질서'다. 그는 사자처럼 강하지만 어린 양처럼 온유한 '목자 왕(Shepherd-King)'이다. 경제학적으로 통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정의로운 법 집행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내면의 무질서한 욕망을 다스리시고, 외적인 악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신다. 그의 왕권은 '낮아지신 지위'인 십자가 위에서 역설적으로 증명되었으며, '높아지신 지위'인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 세 가지 직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지자 없는 왕은 독재자가 되고, 제사장 없는 선지자는 냉혈한 지식인이 되며, 왕 없는 제사장은 무력한 동정심에 그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 세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는 현대 비즈니스 현장에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훌륭한 경영자는 기업의 나아갈 바를 정확히 제시하는 선지자적 통찰력, 직원의 고충을 헤아리고 상처를 보듬는 제사장적 공감력, 그리고 조직의 질서를 확립하고 위기를 돌파하는 왕적 결단력을 동시에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우리가 닮아가야 할 인격의 완성형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지자가 되어야 하고,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혼란한 상황을 수습하는 왕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낮아지신 자리와 높아지신 자리 모두에서 이 직분을 수행하셨듯, 우리의 삶 또한 성공의 자리뿐만 아니라 실패와 고통의 현장에서도 이 거룩한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보좌에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은 '전문성(선지자)', '인간애(제사장)', '사회적 책임(왕)'이라는 현대적 가치와 완벽히 맞닿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하나에만 치우친다. 똑똑하지만 차갑거나, 따뜻하지만 무능하거나, 힘은 있지만 무질서하다.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를 한 인격 안에 녹여내셨다. 진정한 성숙이란 내 안의 선지자적 이성과 제사장적 감성, 그리고 왕적인 의지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균형 있게 성장하는 것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
 

 

 

작성 2026.02.13 12:40 수정 2026.02.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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