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영혼의 결함과 일상의 일탈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8)

뿌리 깊은 본성의 왜곡이 빚어낸 존재의 그림자

의로움이 사라진 진공 상태를 채운 전인적 부패

내면의 오염된 샘물에서 솟아나는 구체적인 악행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8문

 

Q. 18. Wherein consists the sinfulness of that estate whereinto man fell? A. The sinfulness of that estate whereinto man fell consists in the guilt of Adam’s first sin, the want of original righteousness, and the corruption of his whole nature, which is commonly called Original Sin; together with all actual transgressions which proceed from it.
문 18. 사람이 타락한 상태의 죄스러움은 무엇으로 구성됩니까? 답. 사람이 타락한 상태의 죄스러움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본래의 의가 없는 것과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 이것을 흔히 원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원죄에서 나오는 모든 자범죄들로 구성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였다. 어떤 이는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 칭송했고, 어떤 이는 '만물의 영장'이라 치켜세웠지만, 정직한 역사의 기록과 개인의 내면 성찰은 우리 안에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어두운 구석이 있음을 끊임없이 폭로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8문은 인간이 처한 이 비극적인 '죄스러움'의 정체를 아주 정교하게 해부한다. 

 

소요리문답은 죄를 단순히 어쩌다 저지르는 실수나 일탈로 보지 않고,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죄책', '결핍', '부패'라는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 구조적 질병으로 진단한다. 이것이 신학에서 말하는 '원죄(Original Sin)'의 실체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수많은 잘못인 '자범죄'의 근원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은 인류가 물려받은 영적인 채무를 의미한다. 이는 법적이고 관계적인 차원의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도 부모가 남긴 막대한 빚이 자녀의 경제적 삶을 구속하거나, 국가 대표의 실책이 온 국민의 성적표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했고, 그 결과로 발생한 '책임'은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후손에게 법적으로 전가되었다. 이는 우리가 직접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더라도, 인류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미 '죄인'이라는 판결문 아래 태어났음을 시사한다. 법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연대 책임의 엄중함이며,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환경과 혈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실존적 한계를 보여준다.

 

두 번째 구성 요소인 '본래의 의가 없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부족함이 아니라 치명적인 결핍 상태를 뜻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여하셨던 거룩한 질서와 온전한 성품, 즉 신의 형상이 사라진 '영적 진공 상태'를 의미한다. 인문학적으로 이는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상실한 허무의 상태와 같다. 물리학에서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 죄는 의로운 상태의 결핍으로 정의될 수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랑, 공의, 정직의 자리가 비어버린 인간의 영혼은 끊임없이 무언가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만, 근원적인 '의'가 회복되지 않는 한 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볼 때 공공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현대인의 고립된 자아와 닮아 있다.

 

 

세 번째인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은 죄의 영향력이 인간의 지성, 감정, 의지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었음을 말한다. 이를 신학에서는 '전적 부패(Total Depravity)'라고 부르는데, 이는 인간이 악마처럼 최대한으로 악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부분도 죄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전인적 왜곡을 의미한다. 

 

맑은 물이 담긴 컵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물 전체의 색이 변하듯, 죄는 인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감정을 뒤틀며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그림자'처럼,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는 스스로도 제어하기 힘든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부패는 우리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조차 그 동기에 자기만족이나 과시욕이 섞여 들게 만드는 존재론적 결함이다.

 

소요리문답은 이 내면의 원죄로부터 '모든 자범죄들'이 흘러나온다고 선언한다. 자범죄는 우리가 일상에서 말과 행동, 생각으로 저지르는 구체적인 범죄 행위들이다.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경제학 이론처럼, 한 번 잘못 설정된 초기 조건(원죄)은 계속해서 잘못된 결과(자범죄)를 양산한다. 오염된 샘물에서 깨끗한 물이 솟아날 수 없듯이, 죄책과 부패에 찌든 본성에서 거룩한 삶이 나오기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도덕적 실패나 사회적 범죄는 갑자기 튀어나온 우연이 아니라, 이미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 박힌 왜곡된 성품이 기회를 만나 맺게 된 열매들이다. 따라서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교정하려는 노력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를 '선하다'고 믿을 때에 가장 위험한 독선이 싹튼다. 제18문이 폭로하는 우리의 실상은 고통스럽지만, 이 진실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위선을 벗고 진실한 성찰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 안의 부패한 샘물을 우리 스스로 정화할 수 없다는 절망은, 생수의 근원이신 그 분을 향한 갈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죄의 구성을 명확히 아는 지식은 우리를 자학하게 만드는 채찍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회복을 위해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이렇듯 제18문은 인간을 향한 차가운 비난이 아니라, 가장 정직한 '자기 객관화'의 초대장이다. 우리가 왜 이토록 불완전한지, 왜 끊임없이 갈등하고 상처를 주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파산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구제 금융을 요청할 수 있듯이, 자신의 전인적 부패와 영적 채무를 자각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외부로부터 오는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원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정죄하는 교만을 내려놓게 하며, 우리 모두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비참한 연대'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어두운 진단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절망의 늪에서 건져내어, 이 모든 결함을 덮고 회복시키실 새로운 은혜의 서막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
 

 

작성 2026.02.10 10:24 수정 2026.02.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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