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114화 아버지의 생일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아버지에게 생일은 감당해야 할 기억의 무게에 가까웠다

생일을 축하하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나는 생일이 없다”라는 말의 시작

우리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같은 말을 반복해 왔다. 

“나는 생일이 없다.”

 

어릴 적에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돌아오는 날이고, 달력 위에 분명히 적혀 있는 날짜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내 생일에는 케이크가 있었고, 촛불이 있었으며, 축하의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를 묻지 않았고, 아버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 말은 그렇게 집 안에 오래 머물며 하나의 분위기가 되었다.

 

기억과 날짜가 겹쳐진 순간들

아버지의 생일과 겹쳐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난 날이다. 정확한 날짜는 흐릿하지만, 장면은 또렷하다. 삼베옷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말수가 적었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어린 눈에도 그날의 공기는 분명히 달랐다. 웃음이 사라진 집 안에서 아버지는 가장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미 어린 시절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해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생일 다음 날에 찾아온 또 하나의 이별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생일 다음 날이었다.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를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가족에게 시간이 멈춘 날이었다. 집 안에는 울음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오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말보다 침묵이 많았고, 눈물은 혼자 있을 때 흘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생일을 챙기지 않으려 했다. 생일이 돌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떠나보낸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축하할 수 없는 날을 대하는 방식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늘 조심스러웠다. 축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케이크를 놓는 것이 맞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지 고민했다. 그날만큼은 아버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고, 말보다 행동을 먼저 멈췄다. 아버지에게 생일은 기쁨의 날짜가 아니라, 감당해야 할 기억의 무게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된 말

시간이 흐르며 아버지의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말은 생일을 부정하는 선언이 아니라, 기억을 피하기 위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겹쳐 있는 날짜를 굳이 다시 불러내지 않으려는, 조용한 선택처럼 보였다. 어떤 날은 기념해야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지나가야 한다는 판단이 그 안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다시 꺼내본 아버지의 생일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루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생일을 기쁘게 보내는 것이 슬픔을 지우는 일은 아니지만, 슬픔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힘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의 생일을 조금씩 다시 꺼내보기로 했다. 크게 떠들지는 않았지만, 함께 밥을 먹고 짧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아버지는 여전히 생일이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변해버린 풍경, 남아 있는 시간

지금의 아버지는 예전과 다른 생일을 보내고 있다. 아내와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가 함께 모여 있다. 웃음이 있고, 사진이 남는다. 손자는 촛불을 먼저 불고 싶어 하고, 아버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생일이 특별한 날로 돌아왔다기보다는, 그냥 하루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로 채워진 날에 가깝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는 생일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날의 식탁에는 분명히 시간이 쌓여 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어떤 날짜를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날은 축하해야 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지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슬픔이 겹쳐 있는 날짜를, 삶으로 다시 채울 용기를 내본 적은 있는가. 아버지의 생일처럼, 아픔이 담긴 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곁에 머문다는 선택

아버지는 여전히 말한다.
“나는 생일이 없다.”


그 말 속에 담긴 시간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날 곁에 머문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생일을 축하하지 않아도, 생일을 기억하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남는다. 아버지의 생일은 그렇게 조금씩, 슬픔보다 삶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2.08 15:12 수정 2026.02.08 15:20

RSS피드 기사제공처 : 보통의가치 미디어 / 등록기자: 김기천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마음을잇는축제 #사랑나눔축제 #..
죽은영이살아난다는 의미 #예수님 #사랑 #구원 #사랑 #구원의확신
돌담으로 그려진 인문학 지도。#jeju #ssicho
높이가 달라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변할까?。#김포공항 #ssicho..
태극과 음양의 이치를 삼문에 적용, 세 개의 문을 통해 "질서와 경계"를..
비 내린 뒤 서산부석사 ~ 。#서산부석사 #도비다원 #씨초
여행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
2026 대학가 흔드는 AI 홍보 비책, 대학 생존율 높인다
주담대 3억 한도? 영끌족도 결국 손 들었다!
삼성전기 주가 반토막 비명, 바닥인가 탈출 기회인가 분석
정·재계 뒤흔든 역대급 민간 결사체 떴다… 사단법인 더나은대한민국
사회공헌만 하시겠습니까260여 개 언론에 기록하시겠습니까 #ESG #ES..
KOEIA 중소기업 뉴스 포커스 | 영인에스티 AI-MRV 탄소중립 플랫..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라오스로 떠나는 청년들, 아동 복지 패러다임 바꾼다
포항 상권 살리는 한동대 AI 창업 지원 사업 가동
AI 보안 패러다임 바꾼다, 에이아이딥 차세대 솔루션 공개
AI로 불법 현수막 꼼짝 마! 지자체 CCTV와 차량이 실시간 자동 추적..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미용실, 무신고 유사 의료행위 심각… 포상금 최대 2..
대한민국을 함께 바꿀 기업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겠습니까 #CCBS #공..
비오는 지금. 주님의 약속을 기다려봅니다. #찬양 #사랑 #예수님 #..
6근(눈귀코혀몸뜻)×6경(색성향미촉법)×3세(과거현재미래), 태양직경은 ..
#이용사자격증 #인천부평이용학원 한번에 합격했어..
ai365news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사람 #행복나눔 #사랑나눔..
AI 매칭엔진 도입 2026 충청권 ICT 취업박람회 개최
국회 조형물 거장 정보원 작가, 50년 베일 벗는다...성북서 역대급 전..
반도체 끝났다고? 모건스탠리가 폭로한 하반기 주식 대이동 시그널
유튜브 NEWS 더보기

신앙의 성장단계를 아시나요?

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존재의 거룩한 광휘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초청토론회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 이스라엘 3대 절기와 그 의미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관계의 언어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보장특구사업 상리마을 주민리더 도쿄탐방기

봄 (Feat.황정호)

흩어진 말들을 모아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50 Movements] #9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오케스트라 | Shos...

병원 광고비, 어디서 새고 있습니까? 팀퍼포먼스 정용훈 대표가 말하는 AI 병원 마케팅

믿음의 선배들(8) - 타협을 모르는 순교자, 로마의 히폴리투스

개인vs법인사업자 장단점과 법인전환 절세방법(feat. 가족법인과 영업권으로 절세하기)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8) 욕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정교한 매뉴얼

#쏠롱구스노래들024 #SOS024 #광야 #Wilderness #정원진 #solongus #CCM #car...

HAUSER - Oblivion (Piazzolla)

칭찬사랑나눔 칭찬합시다축제시작된다. #칭찬문화

은혜와 감동이 물결치는 찬양 - 삼일노회 수련회

믿음의 선배들(7) - 열정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7] - 피 터지는 성전논쟁, 그 시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