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을 빗나간 화살과 선을 넘어버린 발걸음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4)

기준을 상실한 시대에 다시 묻는 본질적 결핍

적극적인 반역과 소극적인 태만이 만나는 지점

완벽한 도덕의 표준 앞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실상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4문

 

Q. 14. What is sin? A. Sin is any want of conformity unto, or transgression of, the law of God.
문 14. 죄란 무엇입니까? 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현대 사회에서 '죄'라는 단어는 매우 불편하고 진부한 용어로 전락했다. 법정에서는 '범죄'를 논하고 사회학에서는 '일탈'을 말하며 심리학에서는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의미의 '죄'는 현대인의 세련된 어휘 목록에서 점차 삭제되고 있다. 도덕적 상대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기준에 비춘 죄의 정의는 고리타분한 교조주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4문은 죄를 단순히 사회적 합의의 위반이나 심리적 불안정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이라는 절대적 표준과의 관계 속에서 명확하게 정의한다. 여기서 죄를 정의하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부족한 것'과 '어기는 것'이다.

 

첫 번째 정의인 '부족한 것'은 헬라어로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는 원래 궁수가 쏜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간 상태를 의미한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이라는 과녁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든 상태를 뜻한다. 라틴어로는 이를 '프리바티오 보니(Privatio boni)', 즉 '선의 결핍'이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마땅히 도달해야 할 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 자체가 이미 죄임을 시사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가 완벽한 사랑, 완벽한 정의, 완벽한 정직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인 '결핍'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정의인 '어기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죄인 '아노미아(ἀνομία)', 즉 법을 넘어선 불법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을 의도적으로 밟고 지나가는 반역의 행위다. 법철학에서 말하는 '작위(Commission)'에 해당하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소요리문답은 죄를 이처럼 소극적인 결핍과 적극적인 위반이라는 두 측면에서 완벽하게 포괄한다. 이는 현대 윤리학이 놓치기 쉬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으면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섭리적 관점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순종'의 결핍 또한 심각한 질서의 파괴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와 경제적 관점에서 이 개념을 적용해본다면 '부작위(Omission)'의 책임을 떠올릴 수 있다. 기업 윤리에서 마땅히 공개해야 할 정보를 은폐하거나, 제조상의 결함을 알고도 방치하여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이는 적극적인 사기 행위만큼이나 치명적인 범죄로 간주된다. 현대인이 겪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 역시 하나님의 법이 요구하는 '마땅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순종에 부족한 것'이라는 죄의 범주에 해당할 수 있다. 죄는 단순히 무언가를 훔치거나 죽이는 거친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가 요구하는 풍성한 생명의 에너지를 고의로 차단하거나 그 수준을 낮추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심리학적으로 죄의 자각은 인간을 억압하는 굴레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찾는 나침반이 된다. 프로이트가 죄책감을 문명적 억압의 산물로 보았다면, 기독교적 섭리는 죄의 인식을 통해 인간이 본래 지향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높은 기준을 상기시킨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나의 존재가 단순히 생물학적 우연이 아니라, 고귀한 도덕적 의무를 지닌 인격체임을 인정하는 역설적인 과정이다. 기준이 없다면 죄도 없고, 죄가 없다면 인간의 도덕적 고귀함도 설 자리를 잃는다. 따라서 죄를 정의하는 것은 인간의 품격과 책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4문은 우리에게 '표준의 회복'을 요청한다. 죄는 시대의 유행이나 개인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하나님의 법'만이 유일한 잣대다. 우리가 이 거울 앞에 설 때, 비로소 우리의 결핍과 위반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진단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이다. 질병의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치유가 시작되듯, 죄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할 때만 우리는 소요리문답이 앞으로 제시할 위대한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를 온전히 수용할 수 있다. 죄를 아는 지식은 결국 우리를 죽음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채우고 위반을 덮어줄 영원한 생명의 법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우리는 흔히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식의 편의주의적 윤리에 안주하곤 한다. 그러나 소요리문답은 죄의 범위를 '마땅히 있어야 할 선의 부재'까지 확장함으로써 우리의 안일함을 깨뜨린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않은 것, 정의를 외쳐야 할 때 침묵한 것 또한 죄라는 통찰은 오늘날 무관심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뼈아픈 각성을 준다. 죄의 정의는 결국 우리가 얼마나 더 높은 가치를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지를 일깨워주는 거룩한 경고등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

 

 

 

작성 2026.02.07 17:31 수정 2026.02.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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