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정부와 교회의 깊어지는 갈등과 개혁안

- 두 개의 태양이 뜬 아라라트산: 아르메니아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 신이냐 총리냐?, 아르메니아를 두 동강 낸 '영혼의 내전'과 실체.

- 사제들의 반란과 총리의 칼춤… 아르메니아 성탄절이 피눈물로 얼룩진 이유.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최근, 니콜 파시냔 정부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사이의 격화되는 갈등이 발생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며, 대대적인 종교 개혁과 법에 따른 제재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교회는 현 정권이 국가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파시냔 총리는 교회의 수장인 카톨리코스 가레긴 2세의 도덕적 자격을 문제 삼으며 지도부 교체까지 시도하고 있다. 두 그룹은 성탄절 행사를 별도로 개최할 만큼 깊은 분열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은 아르메니아의 사회 및 정치 지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면서 권력과 종교의 분리를 둘러싼 양 측의 날 선 견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을 겪고 있다.

 

국가 정체성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정교분리와 권력의 충돌

 

인류 최초의 기독교 국가라는 자부심으로 수천 년의 풍파를 견뎌온 아르메니아.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성산 아라라트의 그늘 아래, 지금 이 나라는 유구한 역사상 전례 없는 '내전'을 치르고 있다. 총칼의 전쟁이 아니다. 국가의 운전대를 잡은 니콜 파쉬냔 총리와 민족의 정신적 지주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정면으로 충돌한 '영혼의 전쟁'이다. 2026년 벽두, 예레반의 밤거리는 차가운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한쪽에서는 '정치 개혁'을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신앙의 수호'를 부르짖는다. 본지는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코카서스의 작은 거인, 아르메니아를 뒤흔드는 갈등의 이면을 심층 취재했다. 이는 단순히 한 나라의 정치 분쟁이 아니라, 현대 국가에서 종교적 가치와 세속적 권력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인류 공통의 아픈 질문이다.

 

사건의 배경: 패전의 상처가 불러온 불신의 불길

 

아르메니아의 비극은 2020년 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참패에서 싹텄다. 수천 년간 지켜온 영토를 아제르바이잔에 내어주며 겪은 민족적 자괴감은 곧바로 화살이 되어 파쉬냔 총리에게 향했다. 교회는 정부의 외교적 양보를 '민족적 배신'이라 규정하며 거리로 나섰다. 파쉬냔 정부는 이를 '교회의 정치 개혁 방해'이자 '야당과의 결탁'으로 규정하며 정교분리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정부는 교회가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에 부당하게 간섭하며, 심지어 일부 대주교들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 전복을 꾀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최근 몇몇 고위 성직자들이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반면 교회는 이를 신앙 공동체에 대한 탄압이자, 아르메니아의 영혼을 말살하려는 세속 권력의 폭거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불신은 이제 대화로 풀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현재 상황: 지도자의 자격을 묻는 '치명적인 공격'

 

갈등은 정책의 차이를 넘어 지도자 개인에 대한 인격적 공격으로 번졌다. 파쉬냔 총리는 교회의 수장인 가톨리코스 가레긴 2세의 도덕적 정당성을 직접 조준했다. 그는 가레긴 2세가 사제로서의 독신 서약을 어기고 자녀를 두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영적 지도자로서의 자격 상실"을 선언했다. 이는 천 년 넘게 유지되어 온 교회의 권위를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는 가레긴 2세의 권한을 박탈하고 국가가 임명한 대리인을 통해 교회를 관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회 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2026년 1월, 파쉬냔 총리는 가레긴 2세에게 등을 돌린 일부 성직자들과 비밀리에 회동하며 '조정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는 교회 내부의 분열을 조장해 지도부를 교체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수싸움으로 읽힌다. 교회의 성소(聖所)마저 권력 투쟁의 전쟁터로 변질된 셈이다.

 

현장의 목소리: 두 개로 쪼개진 성탄절, 눈물 흘리는 신도들

 

분열의 비극이 가장 처절하게 드러난 곳은 지난 크리스마스 예배 현장이었다. 수백 년간 아르메니아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성탄의 종소리가 두 곳에서 따로 울려 퍼졌다. 파쉬냔 총리를 지지하는 무리는 수도 예레반의 광장에 모였고, 전통적 교회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회의 본산인 에치미아진 성당으로 향했다. 한 가족 안에서도 누구는 예레반으로, 누구는 에치미아진으로 향하며 서로를 외면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노신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우리 안의 이 증오에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총리는 교회를 버렸고, 교회는 정치를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낀 우리 국민의 영혼은 갈 곳을 잃었다." 에치미아진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기도를 올리던 신도들의 눈물은, 이 갈등이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한 민족의 정신적 파탄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배의 열쇠를 쥔 자들과 표류하는 민족

 

아르메니아의 현 상황은 폭풍우 속에서 배의 키를 서로 쥐겠다고 싸우는 선장과 도선사의 모습과 같다. 파쉬냔 총리는 교회가 승객들을 선동해 자신을 배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고 믿고, 교회는 총리가 배를 암초(외교적 굴욕과 가치 훼손)로 몰고 간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정작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것은 아무런 죄 없는 승객, 즉, 아르메니아 국민이다.

 

정치와 종교는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두 축이다. 정치는 현실의 빵을 책임지고, 종교는 영혼의 안식을 책임진다. 이 두 축이 서로를 파괴할 때 그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르메니아의 갈등은 결국 '서로의 영역에 대한 존중'과 '공동의 가치 회복'이라는 지난한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지도자들이 증오의 칼을 내려놓고, 아라라트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평화의 강물 앞에서 마주 앉지 않는 한, 아르메니아의 영혼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작성 2026.01.09 12:20 수정 2026.01.0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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