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85화 두 번째 제안, 자서전 프로그램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지금 할 수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잠시 멈춰 서 있지만, 마음은 계속 앞으로...

▲ 며칠 전 연락받은 자서전 프로그램 제안 문자 내용. [사진=김기천 칼럼니스트]

 

전화를 놓친 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

며칠 전,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창고 정리를 하느라 휴대전화를 바로 확인하지 못했고, 잠시 손이 비었을 때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이 끝난 뒤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기천 강사님 되시죠? 지난번에 지원하셨던 ○○노동자종합복지관입니다. 강사님의 자서전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형식적인 면접 절차를 거친 뒤, 가능하다면 바로 수업을 협의하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여졌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시간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반복되는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

회사 입사를 앞두고 한 동사무소에서 자서전 프로그램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다. 마음으로는 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자리에서 물러설 수 없어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종합복지관에서 보내온 지원서 링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오갔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잠시 머물렀다.

 

멈춤을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

그럼에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이 시간을 성실히 살아내는 일 역시 훗날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다시 말해주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 번의 삶을 통해 배워왔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순서를 지키는 선택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제안이 남긴 분명한 신호

첫 번째 제안이 우연처럼 느껴졌다면, 이번 두 번째 제안은 다르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해온 자서전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는 ‘함께 만들고 싶은 수업’으로 보였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응답이었다. 아직 시작하지 못했을 뿐,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말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돕는 일. 

 

그 일은 여전히 필요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려놓지 않기로 한 마음

나는 이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일. 그 일만큼은 내 삶에서 중요한 축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잠시 멈춰 서 있지만, 마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의 아쉬움은 훗날을 위한 준비로 남겨두려 한다. 방향을 확인한 사람은, 언젠가 다시 걷게 마련이니까.

 

함께 생각해볼 질문

  1. 나는 지금 당장의 가능성만 보고 꿈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2. 지금의 멈춤을 ‘포기’가 아닌 ‘준비’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3. 내가 오래 붙들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떤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

 

두 번째 제안도 진행을 수락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끝났지만, 동시에 하나의 확신을 남겼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 길은 언젠가 다시 나를 부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늘은 선택하지 못했지만, 마음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다. 이 또한 일상을 살아가며 배우는 과정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현재의 자리로 돌아와 오늘을 성실히 살아낸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1.01 18:02 수정 2026.01.0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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